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화두는 "공정"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바라보면 공정한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전 국민적 열망이 큰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공정"이 본래의 뜻보단 상대 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는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 "공정"이란 단어가 경쟁을 통한 성장이 주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단어인지 생각해보았다. "자소설"이라 불리는 취업용 자기소개처럼, 어느순간 우리는 개인이 가진 최소한의 성과를 최대한으로 부풀리는데 익숙해져 있다. "자기 PR의 시대"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TV 속에서 자기 PR의 중요성과 자신감을 강조하던 이들이, 학력 위조, 혹은 허위 경력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맞다. 우리는 목놓아 공정한 사회를 외치고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 내 작은 능력이 크게 비춰지길 바라는 인간이다. SNS의 등장과 함께 유명인이 아니어도 스스로의 잘남과 성공을 과시할 수 있게된 탓에, 우리는 너도 나도 가진것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세상의 모든것 같던 지난 세대가 마무리되고, 젊고 패기 넘치는 천재들이 산업을 다시금 주도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마크 주커버그, 일론 머스크와 같은 스타 CEO들이 언론과 시장을 주도해나가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카카오, 네이버를 필두로 산업군 자체를 뒤집는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우리 사회의 학력위조, 허위논문과 같이, 천재들이 주도하는 시장 속에서 돋보이기 위한 수를 쓰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맥을 통하거나, 권력의 힘을 빌리는 개인 단위의 경력 조작과는 다르게, 기업은 "회계"라는 하나의 언어로 모든 조작이 가능하다. 기업은 매출, 영업이익율 등 회계 장부에 기록되는 숫자들로 가치를 증명한다. 즉, 회계 장부만 말끔히 조작된다면 모든게 오케이란 이야기다.
분식회계의 아버지, 엔론(Enron)
우리는 이런 회계장부 조작을 "분식회계"라고 통칭하고 있다. 일본식 표현이라서 "회계부정" "회계사기"와 같은 표현을 권장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분식회계가 좀 더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것 같다.
그리고 분식회계를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기업이 바로 미국의 천연가스 기업 "엔론(Enron)"이다. 1985년에 창립해 2007년에 완전히 파산해버린 엔론은, 회계학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할 "분식회계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다.
인터노스(Internorth)와 휴스턴 내츄럴 가스(Houston Natural Gas)가 합병하며 만들어진 엔론은 한때 미국 7대 기업에 포함될 정도로 가치가 어마무시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를 구조조정을 통해 줄이기보단, 해외 각국에 유령회사를 설립해서 넘겼다. 숫자로만보면 상당히 건실한 기업이었던 엔론의 경영진은, 각종 투자를 유치하며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진행한다. 그리고 때마침 터진 닷컴 버블과 함께, 엔론의 경영상태는 숫자 조작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이르렀고 결국 파산했다.
매우 간단히 요약했지만, 얼핏 보아도 미국 내에선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이었을지 가늠이 가능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믿고 투자한 대기업이 알고보니 모든게 거짓이었다는건데...

국내 분식회계 사례, 대우그룹
실제로 국내에선 모두가 믿고 투자했던 대기업이 비슷한 방식의 분식회계로 사라졌다. 1970년대 중동 붐으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대우그룹은, 스타 CEO였던 김우중 회장의 리더쉽을 바탕으로 빠르게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하지만 IMF, 오일쇼크 등 위기상황 때 마다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며 베팅한 후유증, 그리고 추후에 밝혀진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가 밝혀지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룹이 되었다.
대우그룹의 사례는, 카리스마 있는 CEO가 불도저 식으로 무한정 사업을 확장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악재를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위기를 기회로 삼는 특유의 전략은, 대우그룹이 내부적으로 분식회계를 강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된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1990~ 2000년대 엔론, 대우그룹과 같은 주요 사건들을 통해, 글로벌, 그리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분식회계"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 감사를 통한 위법 방지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루이싱 커피, 현대에도 여전히 먹히는 분식회계
하지만 그 후에도 우리는 홈플러스까지 매각한 테스코, 부산저축은행 등 다양한 분식회계 사건을 목격했고, 이런 사건들이 소리없이 묻히는 것들을 목격했다. 모든 사건이 분명한 피해자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대책마련보단 불공정과 공정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가곤 했다. 뭐 여하튼, 엔론과 대우 이후 소리없이 묻히는 경우가 많았던 분식회계 사건에, 또 다시 글로벌한 사건이 터진다. 그건 바로 중국의 커피 프랜차이즈 "루이싱 커피"였다.
루이싱커피는 시작부터 요란했다. 스타벅스를 따라잡겠다며 비슷한 수준의 커피를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공급했고, 커피 프랜차이즈가 아닌 IT기업을 표방하며 자체 어플과 결제수단을 마케팅했다. 2017년 1호점을 낸 루이싱 커피는, 3년만에 엄청난 속도로 2000개의 점포를 확보하며 2019년 5월엔 꿈의 무대인 나스닥에까지 입성했다. 그리고 분식회계가 걸렸다.
루이싱 커피는 분식회계를 통해 매출을 50% 이상 뻥튀기했고, 결국 2020년 6월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되었다. 재밌는건, 스타벅스를 따라잡겠다며 커피 질을 일정수준 유지해와서, 루이싱 커피는 아직까지 기업이 잘 굴러가고 있다. 어느정도나면, 올해 다시금 홍콩 증시에 상장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례적인 경우이지만, 상장 폐지 당시 주가가 80% 가까이 떨어졌던걸 고려하면... 루이싱 커피가 다시 투자처로 등장하면 피눈물 흘릴 사람들이 많을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