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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피하고싶은, 세금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

아이라이대 2022. 4. 23.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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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world, nothing can be said to be certain,

except death and taxes.

벤자민 프랭클린

벤자민 프랭클린은 "죽음과 세금"만큼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맞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발전해도, 우리는 세금과 죽음만큼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당장 벤자민 프랭클린만 해도, 우리가 3세기는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인물인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부동산 문제가 가장 화두가 되는 대한민국은, 요즘 신문만 펼치면 각종 부동산 세금과 규제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만큼 "세금"이라는 존재는 국민에겐 가장 피하고 싶은, 그리고 국가에겐 어떻게해서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서 집행해야 하는 개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게 답이라고 했던가, 5월 종합소득세환급을 앞두고 갑작스레 세금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다.

 

1. 법만큼이나 역사의 흐름과 함께 세분화된 세금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 "시작"에 대한 논쟁은 항상 분분하기 마련이다. 인간이 정말 원숭이와 친척관계인지부터, 단군 왕검이 권력을 상징하는지 특정 인물을 상징하는지 하는 등의 논쟁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포스팅에선 "시작"보단, 세금이란 개념의 시작부터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세금의 역사를 찾아보면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고대 이집트와 로마이다. 이 시대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절대적인 파라오, 황제와 같은 권력자의 주도로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기이다. 전쟁을 하기 위해 필요한건 뭐다? 바로 돈이었다. 그리고 권력자들에겐 이 돈을 "합법적으로 추징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말 그대로, 일반 시민들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세금을 걷을 명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고대 사회의 세금은 상상을 초월하는 네이밍이 많다. 특히, 로마나 이집트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국가들에게는 대규모 군대와 식민지를 유지하기위한 세금이 필수적이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세금이었던 "인두세"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국가가 존재하기에 징수한다" - 인두세

말 그대로 태어나기만 하면 징수되었던 세금이 바로 인두세이다. 국가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면 무조건 내야하는 일률적인 세금으로, 특정 국가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무조건 내야하는 세금이 바로 인두세였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최초로 고안했다고 알려져있다.

사실 현대 사회의 개념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세금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인두세를 기반으로 요즘 사회의 모든 세금은 재탄생되었다고 보아도 과장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국가가 존재하기에 국민이 존재한다"라는 개념을 세금에 녹여낸, 모든것의 근간이 되는 세금이 바로 인두세이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최초로 인두세를 도입했을때의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 입장에서 인두세는 정말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지금이야 국민 개개인의 소득부터 소비까지 국가가 추적 가능하다지만, 그 당시의 행정력으론 서민은 커녕 귀족들의 소비생활도 면밀히 확인하는게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존재의 이유"를 "세금부과"로 귀결시킨 단순한 세금부과 방식은 효율적이며 획기적이었다.

세금을 납부하는 이들의 재산, 금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도안되는 방식이지만, 인두세의 개념은 최근까지도 통용되었다. 20세기까지 미국, 스위스 등 우리가 이름만 대도 알만한 선진국들은,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비용"의 개념으로 인두세를 징세했다.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마가렛 대처는, 인두세를 무리하게 도입하려다가 실각하고 권력을 잃기도 했다. 그만큼 인두세는 정치, 행정가들이 항상 만지작거리는, 유혹적이고 매력적인 카드 중 하나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1년에 한번씩 가구수 기준으로 납부하는 주민세도 인두세의 범주에 해당한다. 물론 세금이 굉장히 세분화된만큼, 그 액수가 크지 않은 주민세를 납부함으로서 얻는 이득이 큰 부분도 있어 논란이 될 만한 여지는 없다. 하지만 인두세는 그만큼 여전히 영향력을 가진, 세금의 역사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앙시엥 레짐 (Anciene Regime) - 말도안되는 세금들의 변화

사람들은 보통 프랑스 혁명을 민주주의, 즉 정치적인 개념의 혁명으로 생각한다. 맞다. 프랑스가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프랑스 혁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생각 이상으로 "세금"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꾼 사건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계급사회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고, 처절했다. 왕, 귀족, 성직자로 이어지는 상위 계급들은, 각자의 세금을 만들어내 각각 세금을 거둬댔다. 일례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보편적이었던 토지세, 소금세 등의 세금에 대해 귀족, 성직자는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모든 세금은 서민들의 몫이었다는 이야기다.

더 심각했던건, 왕, 귀족, 성직자들이 "면책권"이라는 어마무시한 특권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세금 안붙는 옷 한벌 사기위해 혈안이 되어있는데 반해, 당시 프랑스 상위 계층들은 만족이란걸 몰랐다. 이들은 1차적으로 매관매직, 즉 허울뿐인 관직과 직위를 사고파는것을 통해 자신들의 사치 비용을 충당했고, 2차적으로 징세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실 징세권을 판매하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도 있던 개념이었다. 기독교의 성서 성경에서도 욕을 가장 많이 먹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세금 걷는 "세리"이다. 세리는 왕족, 귀족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할 수있는 권리를 넘겨받은 일반인들을 일컫는다. 간단히 설명하면, 특정 기간동안 평균치의 세금을 먼저 왕족이나 귀족에게 납부하고, 해당 기간동안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리를 사는게 "징세권"이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당연스레 알 수 있듯, 징세권이 생긴 사람들은 본전, 아니 그 이상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왕족과 귀족에게 징세권을 얻기위해 납부한 금액 이상을 세금으로 뽑아내야했기에, 그들은 잔인하게 서민들을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국가를 책임져야할 왕족과 귀족은 징세권 판매로 누리는 사치에 눈이 멀어있었고, 징세권을 구매한 사람들은 본전 이상의 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세금"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의미가 있는건, 혁명 이후로 지도층은 세금을 집행할 때 매우 신중해졌다. 16세기만 하더라도, 국가 부채를 나름 효율적으로 관리했다고 평가받는 영국도 "집의 창문 갯수에 따라 징세하는 창문세"와 같은 말도안되는 세금을 부여했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국가 행정부는 새로운 세금 책정이 가져올 수 있는 반발에 대한 무서움을 명확히 인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 유지되는 세금, 그리고 뉴스 1면에서 매일같이 논의되는 종부세, 다주택보유세만 보더라도 사실 세금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이 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역사를 통해, 국가를 이끄는 행정부와 정치인들은 "세금"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통감하고 이해해야한다. 가난한 소외계층 뿐만 아니라,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다고 막무가내로 세금을 거둬서 "복지"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쏟아내서는 행위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근 말도안되는 부동산 상승폭으로 말들이 많다. 그리고 여러가지 정치공학적, 경제공학적 개념으로 이런 말도안되는 현상을 그럴듯하게 해석하려는 시도들 역시 많다.

하지만 이럴때일수록, "세금"이 왜 존재하는지와 악용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 보다 진중하게 생각하는 리더쉽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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