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따라

류이치 사카모토 :: 잔잔한 선율과 달리 다이나믹했던 그의 인생을 추억하며

아이라이대 2023. 8. 3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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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Christmas, Mr. Lawrence

일본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OST이자 올해 3월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제목은 몰라도 첫 선율만 들으면 "아, 이거!"라고 유레카를 외칠만한, 대중적인 피아노 곡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체르니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내가, 성인이 되어 다시금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곡을 만든 류이치 사카모토는 올해 3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대표곡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달리, 그는 YMO(Yellow Magic Orchestra)라는 일렉트로닉 팝 그룹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자유로운 아티스트였다.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독특한 음악관으로 유명했던 YMO는, 일본 음악계에 획을 그은 그룹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국내에선 백발을 휘날리며 피아노를 광인처럼 연주하는 이미지로 유명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상반된 이미지이다. 그만큼, 그는 음악가 이상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구축해온 인물이었다.

예술가보단 작곡가, 그리고 작곡가보단 음악가로 살고싶던 사람

“음악이라면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모두 하기 때문에 전자음악가라거나 일본의 음악가, 무슨무슨 음악가, 라는 모든 수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음악가가 좋아요. 굳이 구체적인 수식을 붙여야 한다면 작곡가? 하지만 작곡가도 뭔가 범위가 좁아서, 단지 음악가라고 불리고 싶어요.”

2018년, GQ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렇게 답했다. 그는 자신을 대변하는 수많은 수식언들 중, 다소 단조롭고 포괄적으로 느껴지는 "음악가"라는 타이틀을 택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을 한정된 틀에 가두는걸 선호하지 않았던 음악가였다. 그랬기에 그는 YMO의 멤버로 활약하고, 자신이 OST를 담당한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으며, 내 또래의 남자이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그는 1996년엔 친하게 지내던 소설가 무라카미 류와 <모니카>라는 소설을 쓰기도 하고, 다양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깨나갔다. 아름다운 선율으로 대변되는 국내의 이미지와 달리, 류이치 사카모토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자유로운 영혼, 인후암을 맞이하다.

그리고 2014년, 류이치 사카모토는 인후암을 진단받는다. 자유롭던 그의 예술가적 영혼에, 현실의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내면 속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진 모르지만, 그는 "류이치 사카모토답게" 이 순간들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영원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는 평소 좋아하던 자연의 소리에 주목하고, 모든 순간들을 녹음하기 시작한다. 비 오는날 녹음기를 키고, 양동이를 머리에 쓰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의 소리를 온 몸으로 느낀다. 잠시간 전율을 주고 사라지는 악기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를 온 몸으로 기록하고 체감하기 시작한다.

그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사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상을 떠나기 두 달전, 12개의 신곡을 담은 앨범 <12>를 발매한다. 암으로 투병하는 와중에, 새롭게 작곡하고 녹음한 곡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앨범 발매와 함께, 그는 자연을 해칠 수 있는 도쿄의 재개발을 재검토 해달라는 편지를 남기기도 한다.

 

세상 누구보다 자유롭던 영혼이, 병마와 맞서며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마치 영화처럼 보여준 류이치 사카모토는 <12> 앨범 출시 2달 후 세상을 떠난다.

그의 곡을 나도 언젠간 온전히 연주할 수 있길 바라며

 

류이치 사카모토가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새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방송과 거리에서 종종 마주할 수 있지만, 자연을 마주하고 사랑하던 그는 더 이상 우리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진 않는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예술가, 아니 음악가로 살아가던 그의 곡을 언젠간 나도 한가지의 악기로 온전히 연주할 수 있길 바라며, 그를 기억하는 포스팅을 마무리하려 한다. 한 주의 끝이 다가오는 지금, 그의 피아노 선율이 내 일상의 다시금 평안함을 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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