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하고는 안 친한 콘텐츠 매니아
난 영화, 웹툰, OTT 드라마 등 수많은 장르의 컨텐츠를 소비한다. 이번 주말만해도, 디즈니 플러스의 대작 카지노와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를 차례대로 도장깨기했다. 그정도로, 나는 컨텐츠 산업이 가진 미래와 가능성에 진심인 소비자다.
하지만 스스로 "컨텐츠 러버"라고 자부하는것과 달리, 나는 생각보다 만화책과 엄청 친하진 않다. 물론 어릴 때 친구들과 만화책을 돌려보며 읽은적은 있지만, 정작 완결까지 진심으로 달려본 만화책은 손에 꼽는다. 그래서 나는 만화책의 교과서라 불리는 원블나(원피스, 블리치, 나루토)는 물론, 드래곤볼조차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만화책 냉혈한(?)의 피를 끓게하는 만화가 있었다. 바로 야구 성장만화인 메이져와, 오늘 리뷰를 쓰려하는 슬램덩크다. 두 만화 모두 스포츠와 선수들의 성장기를 그렸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개인적으론 완전히 다른 만화로 기억되고 있다. 메이져가 한 선수의 일대기를 그린 긴 호흡을 다뤘다면, 슬램덩크는 "열린 결말"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억될만한 여운을 준 만화책이었다.

그럼에도 강렬했던 슬램덩크의 기억
슬램덩크가 아직까지도 내 또래 남자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주는 이유는 아마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농구"라는 멋진 스포츠가 주는 전율, 그리고 농구 외에는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북산이 팀으로 진화하는 과정, 그리고 너무나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 맞다, 슬램덩크가 여전히 사랑받고 회자되는 이유는 이런 모든 장점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슬램덩크를 최고의 만화로 꼽는 이유는 "미완성의 걸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슬램덩크는 개개인의 잠재력은 충만하나 팀워크는 제로였던 "북산"이란 팀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고, 다소 허무할만큼 불완전한 결말과 함께 가능성이 충만한 젊은 청춘이 이뤄낼 수 있는 무언가를 전달했다. 물론 그 이상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겐 아쉬움과 불만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슬램덩크가 극장판으로 돌아왔다. 96년 완결 이후 27년만이다. 제목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인데, 주요 내용은 만화책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북산 vs 산왕전을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의 시점으로 풀어낸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그리고 송태섭의 시점으로 돌아온 슬램덩크
만화책에 익숙한 슬램덩크 팬에겐 극장판의 초반 분위기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강백호가 요란스럽게 "나는 천재니까"를 외치지도 않고, 서태웅의 열성 팬클럽이 "L.O.V.E 서태웅"을 외치지도 않는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이야기는 거대한 다른 선수들 대비 다소 왜소한, 북산의 포인트가드 송태섭의 시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만화책은 뛰어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가진 강백호가 "농구 선수"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리고 이번 극장판은 가정사와 신체적 한계를 이겨내는 북산의 포인트 가드, 송태섭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작가는 이 스토리텔링의 무대를, 슬램덩크 작품 중 가장 명승부로 꼽히는 산왕전으로 택했다.
스포를 다 제외하고 소감부터 말하자면, 슬램덩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생각보다 재밌게 볼 수 있을법하다. 그리고, 원작의 내용과 결과를 다 알고 있어도, 주인공 이외의 캐릭터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매우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중간중간 만화책과 겹치는 장면에선 괜시리 반갑기도 하고.

생략의 미학,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다
나는 산왕을 상대로 북산이 어떤 경기를 펼쳤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정도로 명장면이 많았고, 여러번 본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극장판은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송태섭의 관점으로 풀어낸다는 점 외에도, 만화책의 독자들이 기억하는 산왕전의 명장면과 명대사들을 의외로 담백하게 풀어낸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왜 이 대사가 안나오지"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영화적으로 몰입도를 높혀주는 장치가 되었다는 느낌이랄까. 자세한 내용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구체적인 언급은 피해보려 한다.

스포 없이 포스팅을 하기란 매우 어렵다는걸 체감하고 있다. 그만큼, 관람한지 하루가 넘었음에도 긴 여운이 아직도 나를 감싸고 있다. 뭐 여하튼, 결론은 만화책을 본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길 추천한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블라인드에서 "남자친구가 슬램덩크 극장판 보자고해서 정나미가 떨어진다"라는 포스팅이 큰 화제를 모으고, 기사화 되기도 했지만... 사회생활 좀 해본 2030 직장인이라면 눈치껏 잘 이야기해서 함께 보아도 부족함 없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물론, 눈치 없이 스토리를 설명하는건 삼가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시작으로, 좀 더 많은 슬램덩크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극장판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램을 가져본다.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이런 IP 콘텐츠들이 가지는 강점은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 다시금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점이 아닐까싶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디즈니가 여전히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 힘이기도 하고, 피카츄가 몇십년간 전 세계에 백만볼트를 날릴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슬램덩크도, 이들처럼 강력한 프랜차이즈 IP 컨텐츠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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