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따라

인어공주 :: '저 곳으로' 가버린 우리의 에리얼

아이라이대 2023. 6. 1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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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디즈니, 아니 영화 팬들에게 뜨거운 감자였던 영화 <인어공주>가 드디어 지난 5월 24일 모습을 드러냈다. 개봉 전 캐스팅 단계부터 이정도로 바이럴이 된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인어공주>와 주인공 에리얼 역을 맡은 할리 베일리에 대한 논쟁과 관심은 뜨거웠다.

 

그리고 개봉 첫 날, <인어공주>는 약 4만 6천명의 관객을 모으며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에 이은 나름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물론, 네이버를 비롯한 각종 평점에선 거의 테러에 가까운 혹평을 받고있긴 하지만 말이다.

<인어공주>를 둘러싼 수 많은 논란, 그리고 에리얼

 

개인적으론 영화 자체는 이렇게 테러 수준의 별점을 받을만큼 망작은 아니다. 해양 생물들이 다소 징그럽다는 평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실사화 과정에서 각종 물고기와 갑각류 동물들을 나름 최선의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음악 역시 앨런 맹컨의 감성이 잘 전달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개봉 후에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건 바로 주인공 에리얼 역할의 '할리 베일리'다. 인종을 떠나서, 1989년 등장한 디즈니의 <인어공주> 속 에리얼과는 너무 상반된 이미지의 할리 베일리를 대중은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다.

 

PC, 외모논란, 그리고 빨강머리까지

 

할리 베일리 캐스팅 초반에는, 디즈니의 지나친 PC행보에 반감을 보인 팬들이 많았다. 다른 곳도 아닌 디즈니 스스로 만든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를 하면서, 굳이 푸른눈의 백인이었던 에리얼을 흑인으로 바꾸는 행보가 독단적이란 비난이 많았다. 특히, 30년 넘게 애니메이션 속 이미지의 에리얼을 사랑해왔던 팬들에겐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행보였다.

 

"흑인이 인어공주가 되었다"로 시작된 논란은 곧 이어 할리 베일리의 외모에 대한 품평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흔히말하는 서구적 미인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할리 베일리가, 과연 디즈니 프린세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인인 에리얼에 어울리냐는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속 인어공주의 미모는 여러 장면에서 강조된다. 다리를 얻기위한 거래 과정에서 에리얼이 목소리 없이 왕자에게 어떻게 고백할 수 있을지 고민하자, 우르슬라는 세상 쿨하게 "넌 예쁘니까 괜찮아"라고 답한다. 극 중 악역인 우르슬라도, 에리얼의 미모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진저 지우기" 논란까지 더해졌다. 과거부터 백인 사회에선 진저(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 옛날 소설 <홍당무>나 <빨간머리 앤> 등을 보아도, 주근깨와 빨간머리는 서구권에선 묘하게 차별을 받는 요소였다.

 

이런 빨간머리 아이들에게, 호기심 많고 통통튀는 에리얼은 금새 선망의 대상이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왠걸, 실사화 영화 속 에리얼은 드레드 머리를 한 할리 베일리였던 것이다. 실제로 인어공주의 예고편이 등장한 후, "NOT MY ARIEL(나의 에리얼이 아니야)"란 해시태그가 유행처럼 번져나가시도 했다. 그리고 해시태그와 함께, 진저 헤어를 가진 이들의 간증과 같은 글들도 쏟아져 나왔다. 이쯤되면, 인어공주의 캐스팅 논란은 단순 영화의 실사화가 아닌 서구권의 문화적 논쟁거리 수준이 아닌가 싶다.

 

단순 캐스팅이 아닌, 감독의 독단에 대한 반발

 

<인어공주>의 감독 롭 마샬은 캐스팅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인종차별적 편협한 사고"라는 다소 강한 어휘로 일축시켰다. 어느정도 공감한다. 현재 우리나라 커뮤니티 및 영화 평점을 보면, 영화를 안보고도 캐스팅에 대한 반발심에 악평을 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롭 마샬의 이 코멘트 하나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팬들이 화가났던건, 에리얼이 흑인이어서가 아닌 "팬들이 생각한 에리얼과 너무 달라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작의 리메이크가 아닌 새로운 영화라 해도, "에리얼"이라는 오랜시간 사랑받는 캐릭터를 재해석하는덴 어느정도 지켜야 할 암묵적인 선이 있다.

 

롭 마샬은 2005년 작품인 <게이샤의 추억>에 게이샤를 모두 중국인으로, 그리고 남성을 모두 일본인으로 캐스팅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베스트셀러였던 원작이 일본의 게이샤 문화를 잘 풀어낸 수작이었음에도, 롭 마샬의 영화 재해석은 캐스팅 논란과 문화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로 크게 비판받은 바 있다.

 

인어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개봉 후 30년 넘게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 원본이 분명히 존재하는 와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캐스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팬들을 감독은 "인종차별"이란 가불기를 꺼내들어 대응했다. 애초에 시작단계부터 논쟁이 거세질 수 밖에 없는 흐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디즈니를 기대하는 이유

 

분명 최근의 행보는 다소 실망스럽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Vol. 3> 이전 마블 시리즈가 그러했고, <인어공주> 이전 디즈니+에서 공개된 <피터팬 & 웬디>도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디즈니는 가진게 너무 많은 회사다. 그리고 그들의 자산은, 너무나도 많은 팬들에게 여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시퀄은 대중에게 큰 실망감을 줬지만, 여전히 팬들은 개봉 40주년을 맞이한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을 추억한다. 아이언맨 이후 하락세가 완연한 마블이지만, 팬들은 아직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토니 스타크로 기억한다. 그리고, 팬들은 여전히 디즈니랜드를 방문하고 30년도 넘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어린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위 이미지와 같이, 디즈니는 이미 수 많은 공주 캐릭터들을 통해 전 세계 아이들에게 꿈과 선망의 대상을 만들었다. 그들이 굳이, 이미 큰 사랑을 받고 자리잡은 캐릭터를 부술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디즈니가 <인어공주> 개봉에 있어 강경한 자세를 보였어도, 결국 그들 역시 대중과 팬들의 사랑으로 운영되는 회사다. 여전히 가진게 넘쳐나는 "컨텐츠 부자" 디즈니가, 팬들의 마음을 보다 헤아리는 르네상스 시절로 돌아오길 바라며... 다소 길었던 영화 <인어공주>의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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