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따라

안도 타다오 :: 빛은 다른 말로 희망이다

아이라이대 2023. 5. 2.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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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Youth is not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사무엘 울만, 청춘 (Samuel Ullman, Youth)

올해 만 81세가 된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건축과 설계에 참여한 LG아트센터 방문을 위해 방한했다. 그가 설계한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SAN)의 모토인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라는 문장과 같이, 여전히 여느 청춘 부럽지 않은 열정으로 방한 일정을 불태웠다.

 

그는 한시간이 훌쩍 넘는 강연으로 한국의 건축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고, 원주의 시그니쳐 관광코스가 된 뮤지엄 산을 다시금 방문하며 지난 흔적을 추억하기도 했다.

고졸 건축가,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다

 

안도 타다오는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건축 거장이다. 그리고 동시에, "고졸 건축가" "복서 출신 건축가" "암을 극복한 건축가" 등 수많은 역경을 극복해낸 그만의 스토리텔링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안도 타다오를 수식하는 수많은 수식어들을 보면, 그가 "건축"이라는 예술 분야에서 얼마나 독자적인 행보를 펼쳐왔는지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대전료를 주는 권투선수의 삶을 살았고, 건축을 빠르게 공부하기 위해 트럭운전부터 공사장 인부까지 온갖 직업을 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건축가로서 성공을 조금 맛보던 찰나, 말기 폐암으로 장기를 다섯개나 적출하는 절망을 마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도 타다오는 쉽사리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샴 성당에서 새어나오는 한줄기 빛처럼, 타다오는 "빛이야 말로 다른 희망"이라는 생각과 함께 암을 극복해냈다.

 

그리고 자신의 굴곡있는 삶을 투영하듯, 그는 자칫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에 의외성과 창의성을 더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욱 확고히 완성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타다오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잘 녹아든게, 바로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이 아닐까 싶다.

고정관념을 비틀고, 자연을 건축의 일부로 만들다

 

뮤지엄 산은 산 중턱에 위치한 거대한 미술관이다. 아기자기하면서 푸릇한 강원도의 자연 한복판에서, 안도 타다오의 상징과 같은 선과 면으로 공간을 압도하는 미술관을 마주할 수 있다. 미술관 중간 중간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 속, 타다오의 콘크리트 천장이 함께 춤추는 모습은 넓직한 공간을 꽉 채우는 마법을 보여주곤 한다.

 

자연 속에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있음에도, 뮤지엄 산은 이질적이지 않고 되려 자연에 녹아드는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게, 안도 타다오가 세계적인 건축가로 발돋움 할 수 있던 힘이다.

안도 타다오의 "주거는 자연의 일부다"라는 철학은 그의 지난 건축물에서도 잘 나타난다. 1990년 일본 이바라키시에 건축한 "빛의 교회"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아닐까 싶다. 그는 뮤지엄 산과 마찬가지로 선과 면의 압도적인 콘크리트 공간을 만들어두고, 그 속에 기다랗게 십자가 모양의 틈을 내어 빛을 투과시킨다.

 

유럽의 유명 교회와 달리, 빛의 교회에는 그 어떠한 기독교적 조형물이나 장식이 없다. 하지만 "빛이 만들어내는 십자가 형상"만으로도, 그 어떤 교회보다도 성스럽고 기독교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그는, 공간의 고정관념을 뒤틀고 자연을 자신의 작품의 일부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건축가다.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시간까지 고려하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 건축물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가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과 경험까지 고려한 설계를 한다는 점이다. 뮤지엄 산 역시, 차를 주차하고 티켓을 구매한 후 한참을 걸어가여 본 전시장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치 미로처럼 굽이굽이 건축물을 탐방해야 비로소 "뮤지엄 산"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처음 방문한 관람객은 다소 헤멜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타다오가 곳곳에 숨겨둔 노출 콘크리트, 일렁이는 물결이 주는 평화로움 등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다. 다소 비효율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타다오는 이처럼 방문객이 건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모든 과정까지 고려한 설계를 지향한다.

뮤지엄 산 이외는, 그가 일본 홋카이도에 설계한 "붓다의 언덕"을 또 다른 예시로 들수 있다. 붓다의 언덕을 방문한 관람객은 멀리서 고개만 빼꼼 내민 부처상을 볼 수 있지만, 정작 불상 바로 앞까지 다다르기 위해서는 굽이굽이 미로처럼 설계된 통로를 지나 가까워져야 한다.

 

관람객들은 불상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게 되고, 마침내 다다랐을땐 거대한 불상을 고개를 들고 우러러 보게되는 구조다. 종교적 깨달음을 위해 수많은 역경을 견뎌내고, 마침내 그 끝에선 거대한 진리를 우러러 보는 순례자의 마음처럼 말이다.

80대의 건축가, 그리고 그가 그리는 희망

 

그의 건축물을 직접 방문해본건, 뮤지엄 산과 LG아트센터가 전부다. 하지만 그의 역경을 극복해낸 스토리텔링, 그리고 특유의 철학이 담긴 건축물을 공부하고 알아가는걸 즐긴다. 그렇기에, 80이 넘은 건축가가 펼쳐나가는 새로운 희망의 행보가 더더욱 관심이 간다.

 

앞으로 그가 몇 개의 건축물을 더 완성해 나갈진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장 흔하디 흔한 건축의 기본자재인 콘크리트에 새로운 창의성과 독창성을 입혀나가는 그의 건축물들이, 보다 다양한 곳의 자연과 어우러져나가는 모습을 더 보고싶다. 팬심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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