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따라

오펜하이머 :: 천재가 풀어내는 천재의 서사

아이라이대 2023. 8. 2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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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형벌로, 그는 바위에 묶여 영원히 고통받았다. (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12번째 작품, <오펜하이머>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영화의 원작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인만큼, 영화의 시작에서도 관련 내용을 명확히 인용하여 줄거리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이 후 3시간동안, 크리스토퍼 놀란의 섬세한 연출과 킬리언 머피를 필두로한 배우들의 열연은 양자물리학이란 어려운 주제와 역사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매우 몰입감 있게 풀어낸다.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배우이 전달하는 표현력과 치밀하게 짜여진 서사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얼마나 안좋았을까?

 

<오펜하이머>가 개봉하기 전, 한동안 하하가 무한도전에서 오펜하이머 평전을 읽고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남긴 독후감이 화제가 되었다. 개봉 전에는 가볍게 웃어 넘겼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되려 이 짤이 더욱 생각났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의 굴곡진 인생이, 과연 오펜하이머 스스로에겐 어떻게 느껴졌을지 물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맨하튼 프로젝트"라는 미국 국방부의 어마무시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미국 전역의 존경을 받던 시점에 오펜하이머는 행복했을까? 반대로, 자신이 개발한 무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과거 이력으로 정치권의 공격을 받던 순간엔 불행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질문에 대해,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속도감 넘치는 연출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오펜하이머>는 IMAX 최초로 흑백 아날로그를 활용한 영화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관점을 따르는 장면은 컬러로, 그리고 실제 역사와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관점을 반영한 장면은 흑백으로 표현했다"라고 놀란 감독이 밝힌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컬러와 흑백을 오가며 긴박하게 한 물리학자의 일생을 요약해낸다.

 

감독 커리어 초창기 작품인 <메멘토>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이력이 있다. 얼핏 보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사가 있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오펜하이머>에서 놀란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관점을 구분하기 위해 이러한 연출을 구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이 남아있는 스트로스의 관점과 어느정도 감독의 관점이 섞인 오펜하이머의 서사를 명확히 구분하여,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야기와 관계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처럼, 다시금 보고 싶어지는 놀란표 영화

 

한 번의 관람으로 블로그 포스팅으로 섬세한 연출과 이야기의 흐름을 풀어내긴 쉽지 않은 영화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가 어렵고 민감한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오펜하이머라는 천재 과학자의 일생이 단숨에 이해하긴 쉽지 않다.

 

영화 말미, 아인슈타인은 오펜하이머에게 "세상은 자네를 고통스럽게 하고, 언제 그랬냐는듯 성대한 연회와 함께 상을 줄 것이네. 그리고 그들은 자네를 용서하며 등을 토닥여 줄 것이네. 하지만 이 모든건, 자네를 위한게 아닌 그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베푸는 것이네"라는 뉘앙스의 대사를 남긴다. 한 때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며 존경받던 오펜하이머가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페르미상이란 그럴듯한 축제에 초대되는 모든 순간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대사다.

감독이 창작해낸 대화의 순간이지만, 오펜하이머 못지 않게 굴곡진 삶을 살아온 천재 과학자가 건네는 이 한마디가 개인적으론 영화 <오펜하이머>를 가장 잘 나타내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영화 속 논란의(?) 베드신 속 오펜하이머는 진 태트록의 요청으로 "나는 이제 죽음이자, 이 세상의 파괴자다"라는 힌디어를 말한다. 실제로 죽음이자, 인류의 운명을 바꾼 결과물을 남긴 오펜하이머의 인생을 영화 <오펜하이머>를 통해 알아보길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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